이승환

소개

별명은 어린왕자. 앳된 외모와 소년 같은 노래, 20대 못지않은 퍼포먼스로 인해 붙은 별칭이다. 때로는 이 별명이 많은 것을 가리기도 한다. 사실 이승환의 경력, 음악적 역량, 그동안 남긴 족적의 의미, 이 모든 요소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아티스트의 수준은 왕자가 아니라 황제에 가깝다. 한국형 발라드 보컬 계보를 잇는 '발라드 음악의 적자'로도 이름을 떨쳤고 에너지 넘치는 공연으로 '라이브의 황제'라는 칭호도 획득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상당한 역량을 지니고도 있으며 긴 커리어 속에 다양한 시도들을 삽입한 욕심 많은 예술가로도 알려져 있다. 더불어 데뷔와 동시에 기획사(前 우리기획, 現 드림팩토리)를 창립, 데뷔작을 비롯해 모든 음반을 자기 손으로 제작한 남다른 이력까지도 갖고 있다.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재학 중에 본 들국화 공연에 있다고 한다. 이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 교내 록 밴드인 '아웃사이더'에서 보컬을 맡아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난 2학년 때는 '아카시아'라는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당시 이승환과 같이 팀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오태호와 박문수. 오태호는 훗날 이승환의 음악 콤비로서 많은 발라드 곡을 만들어내고 박문수는 외인구단 2기에 보컬 겸 베이시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1987년까지의 일들이다.
 
위와 같은 시작점에서 알 수 있듯 이승환 음악의 자양분은 록이다. 이승환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한 초창기 발라드 음악 곳곳에도 록의 요소가 배있다. 록으로 완전히 전업하는 중후반기의 디스코그래피를 생각해보면 이승환의 이력에는 록이 큰 줄기로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1989년 가을에 선보인 첫 정규 음반 [B.C 603]에서부터 이승환은 성공을 거둔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 찾아갔던 여러 음반사들로부터 모조리 퇴짜를 당했던 뒷이야기와는 실로 대조적인 결과다. 앨범에서는 류화지가 작사, 작곡한 "텅 빈 마음"과 오태호가 만든 "눈물로 시를 써도",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와 같은 트랙들이 히트를 기록했다. 위의 곡들로 이승환은 차세대 발라드 스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는 앞 세대에서 발라드로 대성공을 거둔 이문세의 하향세와 교차점을 형성하는 일로, 새로움을 원했던 당시 대중들의 수요와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 음반에서 이승환은 작곡가로서의 역량까지도 드러낸다. 록의 성향을 담은 "좋은 날"과 "크리스마스에는", "그냥 그런 이야기" 등이 그 증거. 다만 당시 앨범에서의 히트곡이 모두 발라드 넘버였으며 이 곡들의 원작자가 모두 외부 작곡가인지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이승환의 재능은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했다.
 
1991년 7월에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음반 [Always]도 상당한 성공을 획득하며 이승환의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을 선사했다. 이때도 발라드 트랙들이 큰 힘을 보탰고 당시 인기를 끈 곡들로는 어수은 작사, 작곡의 "너를 향한 마음", 신스 음을 적극 사용한 오태호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오태호와 이승환이 공동으로 만든 "나는 나일 뿐"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이승환이 작곡한 감미로운 발라드 "이 밤을 뒤로"와 펑키하게 편곡한 최희준 원곡의 "하숙생"도 여기 수록돼있다. 이승환과 오태호를 중심으로 한 중심 뮤지션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음반의 완성도를 대거 끌어올린 세션 라인업도 여러모로 화제가 되는 부분. 전작에도 참여한 바 있는 조동익을 위시로 김현철, 박성식 등이 편곡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장기호, 함춘호, 손진태와 같은 뮤지션들이 연주를, 박선주, 장필순, 조규만과 같은 뮤지션들이 코러스 파트를 맡아 젊은 가수의 행로를 단단히 해줬다.
 
1년 뒤인 1992년에는 이승환과 오태호 만의 프로젝트 음반을 낸다. 팀 이름과 음반 이름은 둘의 성을 따 만든 25共感(이오공감). 전반부의 일곱 트랙은 이승환의 곡으로, 후반부의 여섯 트랙은 오태호의 곡으로 채우는 독특한 구성을 방법론으로 취했다. 둘 간의 서로 다른 음악적 특색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이 구성 방식에서의 포인트. 이승환 주도의 곡들에서는 감성적인 록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고 오태호 주도의 곡들에서는 세련된 선율이 돋보이는 발라드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승환-오태호 조합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승환의 승승가도는 3집에서도 연장선을 펼친다. 1993년의 세 번째 정규 음반 [My Story]는 아티스트의 초창기 디스코그래피를 가장 밝게 빛내는 명반. 데뷔서부터 이름을 알린 아름다운 보컬을 여전히 구사하면서도 오태호 주도의 사운드 메이킹에서 벗어나 다양한 접근들을 시도했다. 물론 오태호에게서도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라는 발라드를 공급받으나 당시의 히트곡은 더 클래식의 김광진이 작곡한 "내게"와 "Dunk Shot", "Radio Heaven"과 같은 곡들이었다. 더 많은 전자음의 차용과 약간은 댄서블하게 몰고 가는 리듬 구성, 이승환 내면의 록 성향을 이끌어내는 프로듀싱이 변화의 요인으로 크게 자리했다. 더불어 공일오비의 정석원으로부터 받은 "너의 기억"과 "사랑에 관한 충고"도 음반의 대표곡으로 위치하게 됐으며, 이오공감 프로젝트에서의 시리즈 트랙 "잃어버린 건 나"의 세 번째 파트 "잃어버린 건...나 Part Ⅲ"도 또한 앨범의 재미라 할 곡으로 기억된다.
 
다양한 사운드에 대한 음악적 욕심은 4집에 이르러 더욱 확실해진다. 1995년의 네 번째 정규 음반 [Human]에서는 발라드로 대표곡을 이어왔던 이전의 이력에서 탈피하고자 록, 펑크(funk), 디스코, 재즈, 프로그레시브 등 너른 범위의 장르들을 수혈했다. 참여 음악가들의 구성도도 다양해졌다. 주요 음악 파트너로 작업 전반에 참여한 정석원과 전작서부터 협업해온 김광진 뿐만 아니라 김동률, 유희열, 후에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지누(최진우)가 작곡가로 참여했고 해외 유수의 아티스트들과도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는 작곡가 겸 편곡가 데이비드 캠벨과 김현철이 편곡 과정에 들어섰다. 더불어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의 "너의 나라"에는 김종서가 보컬로 가세했다. 트랙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전후로 해 음반의 구성을 '불' 파트와 '물' 파트로 나눈 점도 작품의 또 다른 묘미. 여기서 '불'과 '물'은 각각 인간의 양면을 의미한다. 음반에서는 김동률이 작곡하고 데이비드 캠벨이 편곡한 풍성한 사운드의 발라드 넘버 "천일동안"과 흥겹게 노래를 몰아가는 이승환의 작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외에도 김동률의 "다만"과 이승환이 작곡한 "체념을 위한 미련", 러닝 타임이 9분에 달하는 대곡 "너의 나라" 등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실험적인 성향은 이어지는 1997년의 다섯 번째 정규 음반 [Cycle]에서도 유효하다. 이 음반에서 유희열은 이승환과 작업을 함께 하는 주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 초창기의 오태호와 전작의 정석원의 후임자 격으로 옆자리에 앉았다. 이번 음반에도 역시 다양한 사운드의 곡들이 포진돼 있다. 팝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붉은 낙타"와 "세상 사는 건 만만치가 않다", 펑키한 접근이 보이는 "백일동안"가 음반의 주 색채를 표현하는 트랙으로 자리했고 이승환을 가요계에 뿌리내리게 한 감미로운 발라드 라인의 연장선 "애원"과 "가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또한 음반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 포진돼 있는 세 연작 트랙 "아이에서 어른으로" 시리즈도 짚고 넘어갈 만한 트랙. 이 무렵 그간의 발라드 행보를 갈무리한 컴필레이션 음반 [His Ballad 1]를 발매하기도 했다.
 
1999년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 [The War In Life]는 구성면에서 재미있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4집 [Human]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승환은 음반을 '정상' 파트와 '비정상' 파트로 나눠 트랙리스트를 양분시켰다. 전자에 해당하는 음악은 "그대는 모릅니다"와 "세가지 소원", "첫날의 약속"과 같은 발라드였고 후자에 해당하는 음악은 "Rumour"와 넥스트의 김세황이 참여한 "Let It All Out", 프로그레시브 성향이 드러나는 "나의 영웅"과 같은 록이었다. 음반에서는 "그대는 모릅니다"와 "세가지 소원"과 같은 부드러운 사운드가 사랑을 받았다. 더불어 이 음반은 이승환의 기획사 '우리기획'이 '드림팩토리'로 이름을 바꾸고 제작한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 토이, 김광진, 이소은, 롤러코스터, 이규호, 황성제등 자신의 기획사 드림팩토리 식구들이 총출동한 2000년의 컴필레이션 명반 [Long Live Dreamfactory]가 그 뒤를 이었다.
 
이와 같은 '음반 분리 기획'은 2001년에 내놓은 일곱 번째 음반 [Egg]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말랑한 사운드는 앞 부분에 해당하는 CD 1, 'Sunny Side Up'에, 실험적인 행보들은 뒷 부분에 해당하는 CD 2, 'Over Easy'에 담아냈다. "잘못", "A Song For You", "기다림"과 같은 발라드 넘버들이 전부(前部)를 대표했고 "왜?"와 "위험한 낙원", "Warning"과 같은 락 트랙들이 후부(後部)를 대표했다.
 
이러한 양면 모두로 향하는 접근은 팬들의 호불호를 더욱 극명하게 했다는 점에서 한동안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절대 다수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승환의 음악은 발라드. 그 시작이 록이었고 줄곧 그 성향을 지켜왔다고는 하나 로커로서의 이승환은 그리 흡입력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이 실험적인 행보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마는, 당시에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이라고들 많이 인식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승환은 많은 팬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7집 [Egg] 중 팝, 발라드 음악 만으로만 이루어진 'Sunny Side Up' 파트만 따로 발매해 내놓기도 했고 1997년에 발매한 발라드 넘버 컴필레이션 [His Ballad 1]의 후속작 [His Ballad 2]를 선보이기도 했다.
 
갈림길 모두를 끌어안는 이승환의 행보는 2004년의 여덟 번째 음반 [Karma]에서도 계속된다. 대표곡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끈 "심장병"과 "물어 본다"와 같은 발라드 넘버들을 내세우면서도 4집 이후 줄곧 선보였던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의 "Karma", 하드코어적 성향의 "Notorious", 댄서블한 신스 팝 "변종"을 선보이며 록 사운드가 주도하는 맥락까지 포진시켰다.
 
더욱 다각화된 시각은 2년 뒤에 등장한 아홉 번째 음반 [Hwantastic]에서 더욱 빛난다. 록과 힙합, 행진곡 스타일을 뒤섞은 "건전화합가요", 국악의 작법을 록, 레게 등에 이식시킨 "남편", "달빛소녀", "소통의 오류", 브라스와 피아노, 오르간을 더한 신나는 로큰롤 "Rewind"와 같은 곡들이 이 앨범을 대표하는 갖은 시도의 결과들. 그러면서도 "울다", "이 노래", "그늘" 같은 감미로운 트랙들로 많은 팬들의 귀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7집과 8집 사이의 3년의 공백기라는 이례를 제외하고 줄곧 1,2년 터울로 풀 렝스 음반을 내놓던 이승환은 이쯤 이르러 정규 음반 발매에 다소 긴 휴지기를 심는다. 이 시기는 2007년의 미니 앨범 [말랑]과 이를 기반으로 한 2008년의 리패키지 앨범 [몽롱]이 채운다. 더불어 2009년, 20년 간의 긴 활동을 정리하는 기념 음반 [20th Anniversary Hwantastic Friends]를 내놓기도 했다. 클래지콰이, 유희열, 웨일, 윈터플레이, 윈디시티, 윤도현, 노브레인, 타이거JK, 버벌진트 등 수많은 음악계 선후배들이 참여해 가치를 빛낸 음반이다.
 
2010년 열 번째 정규 음반 [Dreamizer]를 발매한다. 락과 발라드, 펑크,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키며 작품의 색을 다채롭게 했고 품질에 대한 고집도 더욱 확대돼 완성도 또한 크게 끌어올렸다. 지상파 출연을 자제하는 개인 성향과 예전과는 판이하게 바뀐 음반 시장 구조가 맞물려 큰 히트곡은 없었으나 원숙한 역량과 왕성한 욕심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엇다.
 
2014년 데뷔 25주년에 맞춰 열한 번째 정규 음반 [Fall To Fly 前]을 내놓았다. 거대하게 사운드를 구성한 "Fall To Fly"와 가리온의 MC메타가 참여한 단조풍의 웅장한 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작업한 이규호의 "화양연화"가 음반의 대표곡으로 자리했고 이소은이 피쳐링으로 가세한 "너에게만 반응해"가 라디오 전파와 음원 사이트에서 여러 차례 등장해 적지 않은 인기를 몰았다.